부산 남포동 임시수도기념거리에서 임시수도기념관까지 대한민국의 역사 한바퀴 뚜벅이 걷기 여행 후기 정리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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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탁구입니다.
벌써 12월의 둘째주 수요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이제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24년 3월에 티스토리에 애드센스가 승인이 됬는데요. 애드센스 승인이 된 이후로는 수익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여행도 다니면서 포스팅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하면 정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여행을 많이다녀서 올해 2024년 12월인데도 벌써 6월달 포스팅도 끝내지 못했습니다. 12월 3일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40여년만에 계엄령을 선언 후 세번째 대통령 탄핵이 진행중인데요. 즐거운 연말에 계엄령 선언과 탄핵과 촛불 집회가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연말이 끝나기전에는 탄핵이든 하야든 빨리 끝나서 국민 모두가 남은 연말에는 추운 국회 바깥이 아닌 따뜻한 집안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함께 웃음이 피는 추억이 생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주말에는 남포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토성역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왔습니다. 부산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우리나라의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시절이었는데요. 일제의 광복과 함께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이념전쟁으로 일어난 사건인데요. 이승만 대통령 역시 현재의 윤석열 정부처럼 계엄령 등으로 인해 하야를 한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역사를 만들었는데요. 아무튼 지난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이어서 전해드리는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포스팅입니다.
▲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 후기 ▲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현재는 임시수도기념관과 함께 다시 태어났습니다. 임시수도대통령 관저 뒤로가 임시수도기념관으로써 운영되고 있는데요. 부산 임시수도대통령 관저는 원래 당시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사로 운영되어오다가 남북전쟁으로 인해 수도가 부산으로 옮겨지면서 임시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제시제부터 임시수도로 쓰이던 지금의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럼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포스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은 임시수도대통령관저 뒤편으로 연결 되어있습니다. 당시 625전쟁으로 인해서 수도를 부산으로 어쩔수없이 피난으로 인해 옮길 수 밖에 없었던 국내 사정인데요. 지금의 임시수도관저는 당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생활공간만을 두고 나머지는 임시수도기념관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관 및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임시수도관저 뒤편으로는 당시 한국전쟁과 피란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수도를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이곳 임시수도대통령관저와 기념관 주변으로는 현재 서울의 인구를 초과할만큼의 피난민들로 넘처나게 되었는데요. 수도가 서울로 임시로 되면서 피란민 뿐만 아니라 문학인은 물론 피란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생겨났습니다.
▲ 부산 남포동 황남 밀면 후기 ▲
그리고 당시의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란민들의 삶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지금의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피란학교의 운명 등 모두 피란민들을 위해 부산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과 부산의 피란민 이야기
-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란을 오기 시작했다.
- 이 때 부산으로 온 피란민은 약 16만명에 달하였다. 1950년 10월 8일에 중국이 참전하면서 한국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 한편 한국정부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회복했던 서울을 다시 떠나게 된 사건이 1.4 후퇴를 전후해 대규모의 피란민이 발생하였다.
- 이 때 약 26만명이 아직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 1951년 3월을 기준으로 부산에 온 피란민들의 출신지는 서울(165,878명), 경기(32,599명), 이북지역(33,891명), 경남,강원등의 순이었다.
- 피란민들은 걷거나 수레와 소달구지를 이용하거나 혹은 배나 화물열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은 야외와 실내로 전시 기념관을 구분 할 수 있었습니다. 야외에는 당시 피란민들의 삶을 볼 수 있는 판잣집과 천막으로 이루어진 피란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란생활의 모습을 글로써 읽어보며 야외 전시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전국은 물론 현재의 군사분계선 위쪽에 해당하는 한반도 미수복 이북지역까지 전국에서 부산으로 몰려왔습니다. 이 때는 정말 다양한 피란민들로 부산에 집결했는데요. 즉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 중에는 당시 예술가로 불렀던 사람들, 그리고 가수들 조차도 부산으로 피란을 왔습니다. 임시 수도 부산에서는 전쟁속에서도 예술가들의 활동하고 가수들의 대중가요가 전쟁속에서도 이어지는 활동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발발 후 약 3년동안 남과 북 그리고 국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으로 전국에 피란민들이 오게 되었고 피란민들이 살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 했습니다. 산이 많던 부산에는 산 위에 판잣집을 쌓아 올렸습니다. 부산이 정말 산이 많은데요. 아직도 부산역 일대로 보면 산 높은 곳에 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낮은 판잣집이였다면 간혹 부산여행을 가면 아파트도 높은 지대에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전쟁이 끝나고 부산시도 그렇구 정부에서도 전쟁으로 생겨난 판잣집등을 철거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외관상 보기 좋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잘 살기 위해 산복도로와 산업화의 형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야외기념관은 그렇게 넓고 크지는 않았습니다. 가볍게 당시의 부산 임시수도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설명이 적혀 있는 간판을 지나면 당시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지금의 밀면 모형과 피란학교의 세트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시 수도 기념관 건물 뒤편으로는 높은 아파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학업은 계속 했어야 하는 것일까요. 임시수도기념관 야외 전시관 한쪽에는 당시 피란학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을 제대로 보여주는 천막 학교의 모습입니다. 봄,여름, 가을에는 시원하게 공부 할 수 있다지만 겨울에는 어떻게 했을지 궁금합니다.
▲ 임시수도기념관 피란학교 야외 전시관 영상 ▲
▲ 임시수도기념관 피란학교 영상 ▲
남과 북이 이념이라는 시작된 전쟁 답게 교탁 앞 칠판 위에 태극기에는 멸공과 애국이라는 단어가 당시의 분위기를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다닐 때도 공부라는 것은 정말 하기 싫은 것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사회생활 하면서 당시 어른들이 했던 말처럼 공부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넓지 않은 임시수도기념관으로써 전체를 구경하는데까지는 1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당시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사에서 대통령의 임시관저 중 대통령이 지내던 일부만 그대로 보존하고 공개하고 나머지는 기념관으로써 활용하고 있습니다. 야외 전시관인 피란학교와 밀면 모형, 당시의 전쟁의 삶을 보고나서 기념관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을 위해서 이름 모르는 수많은 분들의 기증자 명단이 기념관 입구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지배를 30년동안 받고 광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만의 완전한 독립이 아닌 미국과 소련에 의한 독립이였으며 그렇게 둘로 나뉘어진 아쉬움이 남는 다는 것입니다.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은 당시 한국전재으로 인한 삶을 보여주는 정보를 볼 수 있으며 실제 판잣집 내부와 밀면, 지금의 남포동 광복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최초의 다방에 대해서도 기획 전시관 이 있습니다.
▲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위치 ▲
▲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찾아가는 방법 정리 ▲
부산 임시 수도 기념관은 기념과 전시관, 그리고 대통령 관저로 함께 연결 되어있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몇일전에 작성했던 임시수도대통령관저 포스팅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부산은 한 때 서울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임시수도라서 그런지 서울만큼 교통이 좋습니다. 초기에는 부산 남포동이 임시수도역할이 있던 곳이라 남포동에서 부산역 그리고 현재의 부산 시청까지 지하철이 있더라면 10년전부터는 부산에도 서울 못지않게 지하철 노선이 증가하고 최근 몇년전에는 부산과 울산을 이어주는 광역전철까지 등장했습니다.
당시의 판잣집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사람 한명 들어가기 힘든 입구와 입구 앞에는 물을 떠서 짋어지고 올 수 있는 도구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50-60년대 드라마에서만 볼듯한 판잣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나무로만 만들어진 집입니다. 사람 한명 조차 살기 힘들거 같은데요. 당시의 사람들은 먹지 못해 체구가 작아서 어떻게든 살수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살지 못했을 때는 판잣집 마저 행복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전재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당시 판잣집을 보고, 그리고 부산 여행을 마치고 나서 포스팅을 하면서 지금의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즐기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판잣집(Barrack House)
-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부산시에서 마련한 임시 수용시설에 들어갈 수 없고 셋방을 구할 수도 없는 파린민들은 스스로 살 집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 그들은 주인이 없는 공터나 산비탈 그리고 해안가 등지에 땅을 대강 다듬은 뒤 도심 주변에서 구한 볼박스나 판자, 거적때기 등을 이용해 임시 주거지를 만들어 살았습니다.
- 이러한 집들은 판잣집으로 불렀습니다.
- 이 전시관의 이 모형은 여러 사진 자료 및 책을 참고해서 이 시기에 지어졌을 법한 모습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피란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상가입니다. 피란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당시 부산에서는 밀면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임시수도가 있는 현재의 남포도 광복로에는 밀면가게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온 피란민들의 삶을 볼 수 있던 임시수도기념관이었습니다.
10년전에 KBS에서 방영했던 TV소설 삼생이나 2010년에 625를 기념하기 위해 방영했던 전우를 보더라도 전쟁은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보여주었지 좀 더 자세한 전쟁의 모습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임시수도기념관 방문을 통해서 전쟁도 마냥 힘들다고만 느낄 수 업싱 일상의 생활이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가와 가수, 연예인들은 당시 전쟁속에서도 그들의 활동을 했습니다. 비록 전쟁중이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재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에는 다방 전성시대라는 기획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전쟁속에서도 마냥 슬프고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625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민들이 왔지만 전쟁속에서도 지금의 카페 역할을 하는 다방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면 전쟁도 결국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있던 것 같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 다방 전성시대 정리
- 다방은 개항 이후 근대 문물의 유입과 함께 상류층의 문화 애호의 분위기 속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탄생했습니다.
-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점차 상업적인 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 전쟁으로 문화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차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상류층의 사교장에서 다방은 예술인들의 종합예술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 다방에서 그림 전시회, 문학의 밤, 영화의 밤, 출판기념회, 강습회, 환영회, 송별회, 추모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다방은 다른 한편으로는 허영의 표상이기도 하였습니다.
- 전방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군인들과 비교하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상세계를 찾는 듯한 모습은 전시 분위기를 망각한 퇴폐의 상징으로도 인식되었습니다.
- 이에 헌병대는 수시로 다방을 습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 가난하지만 순수한 예술가들이 즐겨 찾은 다방으로는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의 밀다원, 금강, 스타, 춘추 등이 있었습니다.
- 소설가 김동리는 밀다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55년 현대문학 4월호에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를 발표했습니다.
- 화가 이중섭은 금강다방에서 매일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 은지화를 남겼습니다.
- 임시수도 부사넹서 다방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을 이루어 전쟁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예술을 키웠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에서 임시수도기념관까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임시수도대통령 관저앞으로 왔습니다. 지금의 대통려 관저나 사저와는 비교 할 수 없는 크기인데요. 물론 내부도 지금의 현대식 건축 양식에 비교하면 정말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쟁속에서도 대통려이 권위를 갖추어주는 건축양식은 틀림없습니다. 현대식 건축 기술에 비하면 과거 건물로 초라할 수 있지만 크기는 현재 대통령들 관저 크기와도 거의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토성역에서 주거단지로 해서 임시수도기념관을 왔다면 다시 토성역으로 갈 때는 과거 임시수도정부청사에서 현재는 동아대학교의 건물로 운영중인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에서 도보로 빠른걸음으로 5분정도 내려 오니까 건너편에는 동아대학교 건물이 보이며 일제시대 건축양식으로 보여지는 건물이 보였습니다. 현재는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의 건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이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사에서 대통령 관저로 바꼈다면 이곳 임시수도정부청사는 일제시대를 거쳐서 경상남도 청사에서 임시정부청사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정부청사의 모습보다는 학교 박물관이라고 해요.
▲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 동아대학교 박물관 위치 ▲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정리
- 1923년 부산자혜병원으로 쓰기 지었으나 조선총독부가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경상남도 청사로 고쳐 지어 1925년 4월에 완공하였다.
- 625 전쟁 당시에는 정부의 주요 부서들이 저책을 수립하는 임시중앙청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 휴전 후에는 다시 경상남도 청사로 쓰이다가 1984년부터 2001년까지 부산 지방법원과 검찰청 청사로 사용되었다.
- 현재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건물은 모두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렸으며, 지하 1층과 지상 2층, 옥탑 1층으로 된 구조에 돌출된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세로로 긴 창을 반복 배치하여 웅장하면서 권위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 부신임시수도정부청사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간직한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된다.
- 무엇보다도 625전쟁 당시 임시중앙청으로 사용된 만큼 대한민국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올해 2024년 6월에는 부산 남포동은 물론 송도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요. 특히 송도 해상케이블카 포스팅을 전해드리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카였다고 했습니다. 현대식 케이블카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최초라고 하느데요. 쓰레기 문제등 여러 이슈사항이 있어서 폐지되었다가 10년채 되지 않은 최근에 다시 복원하여 다니고 있습니다.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에서 토성역 방향으로 걷는데 우리나라의 최초라고 볼 수 있는 송도해상케이블카의 모습과 송도 구름다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송도해상케이블카 후기 ▲
▲ 송도 거북섬 구름다리 산책로 후기 ▲
지금의 송도 구름다리는 비교적 안전한 다리였지만 당시 2002년 철거되기 전 모습은 구름다리 줄을 잡지 않으면 옆으로 떨어질만큼 뭔가 위험해보였습니다. 케이블카도 지금과는 다르게 바다위에 선착장 같은곳에 떨어트리는 모습니다. 지금은 치유의 숲이라는 넒은 암남공원에서 자연과 함께 힐링을 할 수 있다면 당시에는 바다 위에 내려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상으로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수도를 옮긴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 정부청사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로 시작된 부산 혼자 여행은 부산의 역사를 모르고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지역이라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어떻게하다가 알게된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관저를 통해 당시의 부산 남포동 광복로에서의 역사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부산 남포동 여행을 하면서 아무생각 없이 먹었던 밀면도 당시 625전쟁을 시작으로 피난민 피란민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것을 알게되니 더 많이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다닐 때는 지루하고 재미없던 역사가 사실 일상에서 만나서 알게되니 더 재미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여행도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내가 스스로 깨닫는 과정에서 즐거움이 더해진다면 재미있고 더 열심히 하는것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토성역에서 주거단지로 갔다면 토성역에서 다시 돌아가는 가는 길은 임시수도기념관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임시수도기념거리를 지나서 가게 되었습니다. 임시수도기념거리에는 당시의 교통수단이던 전차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노면 전차라고 하는데요. 당시에는 사라졌지만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다시 등장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안산 반달섬에서도 트램 도입으로 인해 분양이 시작되었는데요. 사실 언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안산 스마트허브에 위치한 반달섬이기 때문에 10년안에는 도입이 될거라는 말도 있는데요. 역사라는 것이 반복된다는 것처럼 사라진 노면전차가 이제는 트램으로 많은 지자체에서 등장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지루하고 재미 없는 역사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역사를 접하며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는 여행도 추천드립니다.
포스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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