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광복과 함께 625전쟁 속 대통령의 삶을 볼 수 있는 임시수도대통령관저 관람 후기 정리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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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탁구입니다.
부산 여행의 3일차에 대해서 계속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경주에서 여행을 마치고 오후 4시 가까운 시간에 부산 남포동에 도착했습니다. 2일차는 경주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부터는 남포동과 부산 송도해상케이블카를 타면서 부산 남포동 일대 여행을 하였습니다. 3일차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고 봐야할 롯데백화점 광복점 전망대에서 남포동과 영도대교를 보았습니다. 남포동에서는 점심으로 부산 여행에서 유명한 물밀면으로 시원하게 점심을 먹고 부산 여행 마지막날의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 꼭 가봐야겠다고 한 곳은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625전쟁 발발과 함께 수도를 부산으로 옮긴 임시수도부산대통령관저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나라를 뺏기는 아픔과 고통에 이어서 남과 북이 나뉘어 전쟁이 일어났는데요. 북한의 기습 침투로 우리나라는 미군이 올 때까지는 부산으로 모두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수도까지 모두 부산으로 이전했구요. 그래서 부산 남포동에서 떨어진 곳에 임시수도대통령관저가 있었습니다. 이곳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원래 당시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저였다가 전쟁으로 인해 대통령 관저로 임시로 쓰였다고 합니다. 사실 대통령은 어떻게 사는지 가장 궁금했습니다. 물론 현대에 대통령은 오늘 보는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비하면 고급스러운 관저에서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당시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던 당시에는 이런 대통령 관저 역시 서민들에 비하면 좋아보였습니다. 전쟁 때 피난왔던 서민들은 판자집에서 살았다면 대통령은 다소 고급스러운곳에서 살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 포스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임시수도대통령관저의 경우에는 부산지하철 1호선 토성역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2일차에 보냈던 남포동에서 도보로 쉽게 이동 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역으로는 남포역에서 1정거장 이동하면 도착할만큼 가깝습니다. 지하철 타지 않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도보로도 충분히 이동 할 수 있습니다. 토성역 2번 출구에 임시수도기념거리를 시작으로 임시수도대통령관저와 임시수도기념관의 정보도 볼 수 있습니다. 남포동 포스팅에서도 소개해드렸던 부산중앙역 인근에 보수동 책방골목도 소개해드렸는데요. 토성역에서도 보수동으로도 갈수 있을만큼 남포동, 보수동, 토성역은 가까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산은 지방도시이지만 서울 못지않은 구가 많습니다. 서구,중구,남구, 북구로 나뉘어질만큼 광역지자체로써 큰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부산 서구 관광명소 송도해상케이블카 이용 후기 ▲
부산은 지방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크다보니 사실 1박2일이나 2박3일로는 모두 보기 힘듭니다. 내국인과 외국인들도 자주오게되면서 세수확보도 잘되는지 자주 오지는 않더라도 관광명소도 늘어나고 변화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6월 부산 여행은 부산 서구족 관광명소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부산 서구 관광 명소 정리
- 송도해수욕장
- 암남공원
- 대신공원
- 구덕문화공원
- 송도구름산책로
- 송도해안산책로
- 부산공동어시장
- 천마산 조각공원
- 구덕운동장
-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토성역 2번 출구 임시정부기념관 방면으로 나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시수도기념거리라는 표시판을 볼 수 있습니다. 토성역에는 임시정부수도 대통령관저와 함께 당시 국회의원과 국무위원들이 모여서 활동 할 수 있는 임시정부청사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동아대학교 건물로 활용되면서 과거 임시정부청사의 흔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토성역 2번출구에서 현재의 동아대학교(구 임시정부청사) 방향으로 직진해서 가시다보면 임시수도기념거리라는 조형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 좌회전 해서 올라갈 경우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대통령관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행길이었던 저는 2번 출구에서 바로 좌회전을 해서 토성동 마을 거리로 빙빙 돌아서 올라서 갔습니다. 아무튼 2번 출구에서 동아대학교 방향으로 쭉 걸어가가시면 기념거리에서 좌회전하시는게 더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비록 돌아서 올라가긴 했지만 10분 정도 걸려서 왔습니다. 임시수도기념거리에서 좌회전 할경우 임시수도대통령관저 입구로 바로 갈 수 있다면 저는 돌아서 가서인지 옆쪽으로 임시수도기념관의 모습이 보이면서 바로 아래에 임시수도기념거리로 내리막길이 보였습니다.
▲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 위치▲
역사는 학교다닐 때부터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던 과목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대통령관저 주변도 조용했습니다. 평일 화요일이라 더 조용할 수 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말이라도 그렇게 찾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역사라는 지루한 내용이기 때문이겠죠. 이번 여행에서는 바로 옆에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대통령관저 모두 다녀봤고 소개해드릴 예정인데요. 우선 이번 포스팅에서는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대해 먼저 전해보려고 합니다.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하나의 건물 단지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입구는 임시수도대통령관저 쪽에 있었습니다. 주차장은 임시수도기념거리에서 올라와서 좌측으로 좀 만 내려가면 있었습니다.
▲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후기 ▲
입장료는 무료로 경비 보시는 분의 공간이 있는것 같은데 관람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관광지의 경우 일부 관광지는 일요일 휴무 대신에 월요일에 휴무인 곳이 있습니다. 임시수도기념관의 경우에도 월요일이 휴무일이라는 점 참고 바랍니다.
부산임시수도 대통령관저와 임시수도기념관은 역사 문화지이다보니 건물 주변에서 당시의 임시수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역사와 관련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자주 찾는 부산이다보니 한글 설명문은 물론이고 영문과 일본어로 되어있는 설명과 당시 컬러가 없이 흑백사진이 전부이다보니 흑백사진을 통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잃고 30년이라는 세월동안 일본 국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동안 조국을 잃은채 일본의 식민지라는 삶속에서 살았는데요. 비록 우리의 힘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미국에 일본이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철수 했습니다. 철수를 했지만 위에서는 소련이 한반도 북부를, 남쪽은 미국이 한반도 남쪽이 차지하면서 한반도는 둘로 쪼개지어 이념전쟁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평화롭게 되지 못한채 남과 북이 총을 겨누어 북한의 침투로 3년이라는 세월동안 전쟁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부산으로 우리나라의 수도를 이전하고 피난만들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부산이 많은 지역으로 당시 피난민들은 산위에 판잣집을 지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만 보더라도 판자집은 아니더라도 부산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함께 산위에 촘촘히 집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에 와서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 위에 아파트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도 부산이라고 생각됩니다.
▲ 부산 남포동 광복로 황남밀면 후기 ▲
3일차 여행에서 부산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오기전에 광복로 거리에 황남밀면 남포동점에서 물밀면을 먹었는데요. 부산 여행오면 사람들이모두 밀면을 먹습니다. 그러나 이 밀면의 역사가 정말 길었는데요. 한국전쟁 속에서 피란민들 손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해요. 그렇게 부산은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먹거리와 주거 공간을 보여주는 역사의 장소였습니다.
피란수도 부산 이야기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살마들이 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않은 부사능로 피란을 왔다.
- 이승만 대통령 역시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왔고 전쟁이 일어난 지 약2개월만인 1950년 8월 18일에 부산을 임시수도로 지정하였다.
- 정치, 경제, 외교, 행정, 교육 기능이 부산에 집중되면서 정치인, 공무원, 각 분야의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부산으로 대거 모여 들였다.
- 그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전국에서 부산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 광복 후 30만명 정도였던 부산의 인구는 1951년에 이르러 84만명에 달하였다.
-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1953년 7월 이전까지 부산 임시수도대통령 관저에 머무르며 정치,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의 국정 현안들을 처리하였다.
- 부산으로 모여든 수많은 피란민들은 낯선땅 부산에서 억척스럽게 일상의 삶을 이어갔다. 그 결과 부산은 정치인, 공무원, 예술인을 포함한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도시가 되었다.
- 오늘날까지도 부산은 곳곳에서 이들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 이승만 대통령이 1,000여일 동안 머물렀던 이곳 임시수도대통령 관저 역시 그 중 한곳이었다.
- 부산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먹던 밀면 역시 피란민들의 손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부산의 특정적인 경관으로 불리는 산동네와 산복도로 역시 한국 전쟁시기에 형성된 측면이 적지 않다.
요즘은 역사와 관련된 관광지를 가면 해설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번 6월의 경주에서 첫째날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주에서 첨성대,동궁과 월지(안압지), 월정교는 신라시대의 역사의 장소로 직접 주변에 적힌 설명문을 읽을 수 도 있는데요.
▲ 신라1000년 역사 동궁과 월지 문화해설사 관람 후기 ▲
정해진 시간동안에는 해설사를 통해 좀 더 생동감있는 당시 역사 정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경주뿐만 아니라 서울에 창덕궁,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전주 한옥마을 내에 경기전 등 역사 문화재에서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 문화해설사 정보
- 근무기간 : 연중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임시수도기념관의 경우 매 주 월요일 휴무입니다.)
- 근무시간 :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 해설사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진행하고 계십니다.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앞에는 당시의 역사적 흔적을 볼 수 있는 여러 설명 들이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빈당의 유래라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요. 임시수도대통령 관저 건물은 일제 시대에 세워진 근현대사적 건물의 외관을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임시관저로 쓰기 전에는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로 건립된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로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일본식 건물은 당장 없애햘만큼 증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픈 역사이지만 그것을 보고 배우고 다시는 겪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일본식 건물을 볼 수 있는 지역은 많이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서울과 부산, 포항, 군산, 목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빈당의 유래
- 경상남도 창원 이전 후인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한 대통령 관저의 당호
- 개관에 즈음하여 역사하자 정중환 선생이 지은 당호를 독립운동가 한형석 선생의 글씨로 현판을 새겨 걸었다.
- 사빈은 빈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빈은 지금의 섬서성 순읍에 있었던 중국 고대 은나라의 제후국을 지칭한다. 또한 빈은 주나라 개국의 기초를 닦은 문왕의 조부 고공단보가 다스렸더 나라이기도 하다.
- 고공단보는 빈을 덕과 의로써 다스렸으므로 온 나라의 백성들이 그를 받들었다.
- 어느날 북방의 오랑캐 훈육과 융적이 재물과 땅, 백성을 요구하머 침략하자 고공단보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싸우지 않고 빈을 내주고 기산을 남쪽의 주원으로 이주하였다.
- 이대의 빈의 백성들도 모두 고공단보를 따라왔으며, 그의 덕망이 널리 알려지자 이웃나라 백성들이 그에게 귀순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그의 손자 창이 빈을 회복함은 물론 은나라에 이어 중국 전체의 패권을 장악해 주나라르 건국하게 된다.
- 사빈당이라는 당호는 고공단보와 빈의 고사에 빗대어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침략에 의하여 서울을 내주고 부산에 임시수도를 마련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빼앗긴 땅을 수복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 앞에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 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임시수도대통령 관저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관저 뒤에는 지금은 임시수도기념관이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제 시대에 새겨진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2층 이상 건물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고 일본에 의해 현대의 건물의 모습들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나라를 빼앗고 지배한 일본의 잘못이 크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1층에는 응접실, 서재, 내실, 거실, 식당, 부엌으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특히 응접실은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2층은 대통령의 마루방(회상의방)과 집무실이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어져서 거의 100년 가까이 되다보니 건물이 오래되고 특히 2층으로 올라갈 경우 안전상의 문제로 인원 제한도 따르고 있었습니다.
▲ 대중교통으로 부산 오는 방법 정리 ▲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대해 정리해드려요.
- 임시수도기념관이자 임시수도대통령 관저는 부산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에 위치해있습니다.
- 개인차량이나 렌트카로 가시는 분은 위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설정해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 주차는 임시수도기념관 입구 좌측에 주차공간이 있습니다.
- 대중교통으로 이동 하시는 분은 토성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인근에 구 임시정부청사 건물로 현재는 동아대학교가 있습니다.
-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 영업시간
-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입니다.
- 오전 9시부터 18시까지입니다.
- 월요일이 공휴일인경우 다음날이 휴관이라고 해요.
- 제가 6월에 다녀간 이후로 2024년 7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는 대통령관저 보수공사로 인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 건물이 오래되다보니 특히 2층의 경우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 문의사항은 051-244-6345로 문의바랍니다.
1층으로 들어오면 오래된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근대 건축양식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입구 옆에는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었습니다.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면 앞쪽에 직원 한명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문에는 외부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응접실과 왼쪽으로는 집무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화장실인데요. 그래도 당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정도면 고급스러운것 같습니다. 당시 피란민들의 경우 산 위에 판잣집을 지어서 살았는데요. 판잣집이라고 하면 화장실도 공동으로 쓰는 불편함이 있었다면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개인공간이 있던 것은 당시에는 고급스러운 관저였을 것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한 지금으로서는 당시 대통령 관저의 생활공간은 정말 낡고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일반 국민들은 누리지못한 호화스러운 곳이었던것 같습니다. 이곳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는데요. 당시에는 저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에는 노태우 대통령부터 김영삼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까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를 갔다왔는데요. 사실 사저 안에까지는 들어갈 수 없는데요.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사저까지 모두 국민에게 반환하고 갔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사저는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수도관저에 비하면 정말 많이 변한것 같습니다. 그만큼 시간과 함께 기술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1층 입구 오른쪽에는 응접실이 있는데요. 당시 외부 손님이나 대통령 관저를 방문하는 여당 야당 의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 같습니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던 벽난로도 응접실 한쪽에 있었습니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 건물 밖에서 보면 굴뚝이 있었는데요. 벽난로 때문에 있던 것 같습니다. 에어컨은 과거에는 없었지만 아마도 관람객들을 위해 설치한것이겠지요.
응접실 맞은편에는 당시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모형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서재 였는데요.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갈색과 검정색의 가방과 뒤쪽으로 병풍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자 계엄령등으로 스스로 하야를 했는데요. 이 포스팅을 하는 시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윤석열대통령도 2024년 12월 3일 기준으로 밤 늦게 계엄령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포스팅을 하는 시점과 탄핵과 함께 하야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는데요. 포스팅하는시점과 뭔가 맞물리는 것같아 신기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하야를 하거나 탄핵이 당하는게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하야와 타핵을 통해 지도자 공백으로 인한 국민의 삶은 더 힘들어 질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서재를 지나서 내실이로 왔는데요. 아마 당시 대통령과 영부인, 가족 내외분들이 머무르던 장소엿던 것 같습니다. 당시 피란민들은 산 위에서 살았다면 대통령이라는 신분 덕분에 마음은 편하지 않겠지만 몸은 편하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던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층 응접실과 서재, 내실을 지나서 거실로 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잇 거실이 모습은 사라지고 모형전시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요. 당시 피란민들의 삶을 모형으로 만들어서 전시해둔 것 같습니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지어진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걸을 때 건물에서 소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일본식 건물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식 건물의 경우 집 내부를 걸을 때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소리가 나는 이유는 누군가 침입했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군산에 일본식가옥에서도 갔을 때도 걸을때마다 바닥에서 소리가 났었는데요. 이러한 이유라고 해요.
1층 다 돌아보는데는 시간은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당시 대통령 관저라고 해서 그대로 다 있을거 같았는데요. 서재, 응접실을 제외하고는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동하다보니까 당시 대통령의 욕실로 사용하던 방과 당시 경비실로 사용되던 증언의 방이라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임시수도대통령관저 대통령실에는 조리사실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조리사실에는 당시 한국전쟁 특공대원으로 활약했던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이라는 방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특공대원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
- 한국 전쟁 중 특공대원으로 활동한 이정숙 할머니는 1932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성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1950년 9월 백골부대에서 모집한 G-2 특공대에 자원입대해 수색,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1951년 4월까지 8개월간 복무했다.
- 이후 부산에 내려와 줄곧 살면서 안보강연,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전후시대들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평화통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원래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625전쟁 이전에는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사였다가 전쟁 터지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관저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경상남도 도지사의 관사에서 대통령 관저로 되었고 관사와 관저에서는 당시 도지사와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 가족 내외분들과 대통령 관저에서 일하는 분들이 함께 식사 할 수 있는 거실과 식당도 있었습니다. 서구 문화 양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실 식탁에 보이는 토스트기가 참 인상적입니다. 저 시대에도 토스트를 해먹을 수 있었던게 신기했습니다.
생각의 방이라는 곳입니다. 전형적인 일제 시대에 지어진 마루바닥과 일체의 건축물로 보이는데요. 창문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일제시대에 살지는 않지만 10년전에 각시탈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면 느껴집니다. 각시탈에서 당시 일본인으로서 한국에 거주하던 기무라타로와 기무라 순지가 살던 집이 일본식 건축가옥이었는데요. 일본식 건축 가옥은 거의 비슷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도 당시 일본식 가옥형태이다보니 비슷한 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곳 생각의 방은 임시수도대통령관저로 사용될 때는 조리사가 거주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전시 개편에 맞춰서 한국 전쟁 및 이승만 대통령 관련 도서를 비치해 자료와 함께 당시를 떠올려 볼 수 있는 "생각의 방"으로 꾸몄다고 합니다. 도서를 보고나서는 제자리에 꽂아달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의 세금으로 마련된 재산이며 다음 관광객을 위해서 꼭 꽂아두는 시민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층은 거의다 둘러 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시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 내외들이 이용했던 욕실의 모습입니다. 당시 전쟁속에서 피란민들은 씻는것 조차 힘들었을텐데요. 대통령의 삶은 목욕도 하면서 조금 더 부담감이 덜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통령이니까 외국사신을 만나야하기 때문에 판잣집에서 살 수 없던 대통령의 신분인 것 같습니다. 백성들은 힘든 것을 알기에 전쟁속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편하게 목목욕하고 밥을먹지는 못햇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더 눈치보이고 불편했을거고, 그런 감정속에서도 나라를 위해서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일제시대에 지어진 구 한국은행 관람 후기 ▲
대통령 관저 2층으로 올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의 또다른 생활공간있습니다. 계단이 좁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자피 대통령과 영부인정도 다닐것이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손잡이도 없어서 사실 내려올 때는 약간 무섭기도 해습니다. 발을 잘못 내딛으면 굴러 떨어질수도 있기 때문이죠.
2층은 관람인원을 최대 7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건물이 거의 100년 가까이 되다보니 오래되고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일본식 가옥을 체험 할 수 있는 군산의 일본식 가옥도 현재는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있습니다. 비록 일제 강점기의 치욕이 있지만 일제강점기 문화를 통해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교육 자료이기도 합니다. 군산의 일본식가옥은 오늘 포스팅하는 임시수도대통령관저와의 큰차이는 서민과 대통령이라는 차이입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당시 일본사람이 거주하다가 광복후에는 내국인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2019년 이후로는 안전사고와 문화재 보존등으로 내부는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임시수도대통령 관저는 당시 대통령의 집무실과 마루방(현재 회상의 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과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2층은 그냥 텅 빈 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구요. 현재 회상의방이라고 불리는 마루방에는 임시수도기념관과 관련된 영상물을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6월달로 많이 더웠는데요. 에어컨이 아직 가동되지 않아 매우 더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않아있다보니 시원해지는 신기함도 느껴졌습니다.
▲ 부산 임시수도대통령 관저 2층 집무실 영상 ▲
2층에는 직원 한분이 계속 대기하고 있으며 관람객이 올라올 경우에는 영상 상영에 대해 안내해주면서 수동으로 영상을 틀어주고 있습니다. 역사라는게 가장 지루하겠지만 그래도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 왔다면 대통령관저의 탄생배경과 함께 우리의 역사에 보고가는 것도 추천합니다.
임시수도기념관 영상물 상영 정보
- 임시수도 부산, 1000일의 역사 (7분)
-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7분)
임시수도대통령관저 2층 집무실 별면에는 당시 부산임시수도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활동에 기록과 사건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계엄령과 함께 대통령 관저 포스팅을 통해 당시 70년전에 경험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뻔한 계엄령 사건을 생각하니 다양한 생각이 일어나긴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초기에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서 였다면 윤석열대통령은 국가가 안정되는 과정에서 여야 문제에서 생긴 일이라고 보는데요. 과거에는 민주주의가 덜 성숙되었다면 과거보다는 더 많이 성숙했을거라고 하고 탄핵이 잘 해결되어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로부터 모범을 되도록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층에서는 약 10분정도는 당시의 이승만 정부의 사건과 활동들을 보고 남은 시간은 부산임시수도기념관에 대한 상영물을 보면서 더운 날씨속에서 잠시 벗어나 실내에서 시원함을 느끼다가 바로 옆에 임시수도기념관을 관람하기 위해 천천히 임시수도대통령관저를 빠져나왔습니다.
이상으로 부산 임시수도대통령관저에서 당시 625전쟁으로 인한 절박하고 긴급했던 대통령의 삶과 정치적활동 관람했던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산임시수도기념관은 대통령관저와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나누어져있었는데요. 우선 대통령 관저를 보았고 다음에 계속 이어서 임시수도기념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6월달에 방문했었을 때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여당고 야당이 계속 싸우면서 특검과 탄핵등이 지속되기는 했는데요. 그리고 포스팅을 하려는데 올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대통령의 계엄령 선언이 있었습니다. 물론 과거와는 다르게 성숙된 민주주의로 인해 계엄령은 국회에서 2시간만에 해제되어 종료되었습니다. 당시 625전쟁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불안정한 이념으로 인해 남과 북이 전쟁을 일으켰고 북한의 먼저 침투로 인해 대한민국은 부산까지 수도를 이전해야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는 통일되지 않은 휴전국가로 언제든 전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2024년 12월 3일 윤석열대통령의 계엄령과 더불어 이미 윤석열정부는 북한에 미사일까지 날리려고 했던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었던 심각했었는데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여당과 야당이 사우거나 혹은 국제적으로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법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민주주의와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전쟁에 대한 내용도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년동안 부산 남포동 여행을 하면서 주변에 먹거리와 관광지만을 돌아다녔는데요. 사실 남포동은 625전쟁을 통해 우리나라의 임시수도로써 한때는 서울보다 많은 인구를 자랑했던 곳입니다. 전국에서 피난민이 왔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피난민으로부터 당시 밀면이라는 음식과 각종 문화활동들이 남포동에서 일어났던 것이지요. 부산에 와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당시 남포동에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에 가보시는것은 어떨까요?
포스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좋은하루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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